
김훈
2007.06.22 발간
예전에 포스팅한 글 중 <창천항로> 가 있었다. 삼국지를 조조의 시각으로 재해석 한 꽤나 괜찮은 작품이었고 이와 연관되어 <삼국지>란 작품에 대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후에 읽은 작품이 바로 <칼의 노래>란 작품이었다. 우리나라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큰 영웅으로 평가받는 인물인 이순신에 대한 소설이란다. 이미 이순신에 대해서는 교과서를 비롯하여 드라마와 여러 매체를 통해 어느정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상당한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이순신이 남긴 난중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작가의 허구적인 요소를 어느정도 가미하여 만들어진 이 작품의 첫페이지를 넘기면서 문뜩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었다. 이 책은 소설로써 읽어달라는 작가의 말.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그 문구가 유달리 다르게 느껴져왔다. 소설과 역사의 차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작품들은 참 위험한 폭탄을 안고 있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떠오른다. 대표적으로 이미 소설이 역사적 사실처럼 치부될 정도로 커버린 <삼국지연의>처럼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은 <창천항로> 에 있으니 더 언급하지는 않겠다. 여튼 첫 페이지에 있는 그 문구를 보고 이 작품을 모두 읽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과 허구를 분리하기 위해 작가가 꽤 신경을 많이 썼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뭔가 올바른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지금까지의 역사소설에서 이렇게 사실과 허구에 대한 차이점을 알게 해준 작품은 거의 드물었으니까...
이 작품 속에서 나는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을 만날 수 있었다. 능력 좋지만 시기받아 옥에 갇히고 백의종군하여 연전연승을 거두다가 장렬히 숨을 거두는 영웅 이순신의 모습과는 어느정도 거리가 있었다. 어느정도 작가의 생각이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그가 임금(선조)를 생각하는 부분은 고개를 끄덕여질 정도로 맞아떨어지는 듯 했다. 임금이 자신을 어찌 생각하는지에 대해. 현 상황에 대해. 전쟁이 끝난 후 상황에 대한 소설 속 이순신의 생각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영웅 이순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임금을 위해 싸운게 아니라 나라를 위해 싸운 것이다. 선조라는 두려움 많던 임금의 성향으로 봐선 전쟁이 끝난 후 나라를 구한 영웅으로 떠오를 것이 분명한 이순신을 두려워할 것이 틀림없고 어떤 방법에서든 이순신의 앞날이 순탄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암시를 주면서 이순신은 노량해전을 끝으로 사라진다. 작가의 생각이 곧 이순신의 생각이었으니 그가 과연 정말 적의 총탄에 죽었는지 자살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난 이 작품에서 임금의 생각을 꿰뚫고 있었지만 백성과 나라를 위해서 싸울 수 밖에 없었던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이 정말 훌륭한 이유는 왠만한 역사서 못지 않게 자세한 전쟁과 정치적인 상황을 알 수 있으면서도 소설적인 재미를 잃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백의종군하여 전쟁의 마무리를 장식할 때까지의 일들을 대화체 하나 없이 묵묵히 서술하면서도 한산도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같은 전쟁 씬에서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의 긴박감을 느껴지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다. 서술형만으로 어찌 그런 긴박감을 줄 수 있는지 감탄이 나오기도 했다. 국내소설을 읽으면서 이렇게 신선하고 독특한 매력을 가진 작품을 처음 느껴본 듯 하다. 그리고 작가의 이름을 봤다. 김훈... 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가구나. 기억해둬야겠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구입한 국내소설이 바로 김훈 작가의 책이 되었다)
다시금 책을 펼쳐보니 문득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이 떠오른다. 임금의 생각을 알면서도 대항하지 않으며 나라와 백성을 위해 싸웠(을 것 같은)던 이순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 작품이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을 우리나라의 <삼국지>와 같은 작품으로 평가받길 바란다.
뱀다리.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는 작품을 만든 감독의 특징을 느끼기 쉬운 반면 소설 같은 경우에는 다소 느끼기 힘든 것이 사실이었지만 (코엘료, 베르베르, 노통브 정도) 이제 국내에서도 김훈이라는 작가를 느끼게 되서 정말 반가운 마음이 든다.
뱀다리2. 원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큰 언급이 없어서 다소 아쉬운 면도 있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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